광복 76주년_ 광복절의 의미와 우리의 자세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며, 1949년에 국경일로 지정되었습니다. 국가적으로 전국적인 경축행사가 이뤄지는 이 날은 전국의 모든 가정이 태극기를 달아 경축하며 각계각층의 인사와 국가유공자 및 가족들을 초청하여 정부행사가 진행됩니다.
광복은 누구에게도 억압받지 않는 '자유'와 스스로 선택하고 행하여 설 수 있는 '독립', 그리고 인간적인 삶을 꿈꿨던 사람들의 투쟁과 헌신이 이뤄낸 결과물이었습니다. 탄압에 굴하지 않고 단결력을 보이며 독립의 의지를 불태웠던 우리의 민족성은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2021년을 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우리는 유엔 무역개발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대한민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욱 격을 갖춘 자세로 선진국 다운 면모를 보이며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생각해보는 게 바람직해 보입니다.
물론 저 역시도 일본과 얽힌 역사를 배우고 보고 듣고 자라왔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주범이었던 독일이 항상 고개 숙인 자세로 세계인들에게 사죄하는 것과는 달리 지금까지도 비양심적인 왜곡된 역사를 교육하고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등의 그들의 행동에는 화가 납니다.
하지만 현자는 대의를 품고 두루 어우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뿌리 깊게 자리 잡아있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적대적인 인식에 너무 휩싸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 스스로를 견고히 하며 그들의 문화와 생활은 존중하며 잘하는 것은 잘한다 인정할 수 있어야합니다. 무조건 따르거나 무조건 배척하는 식의 단순한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들을 큰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하면서도 지혜롭게 대처하며 함께 살아가려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할 것입니다.
광복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관련 영화
(잠깐! 여기서 의사와 열사, 지사라는 호칭이 갈리는 것은, 의사는 대의를 위해 무력적 투쟁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이며, 열사는 대의를 가지고 비폭력 저항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을 칭합니다. 지사의 경우, 독립운동 당시 사망사유가 독립운동과 무관한 병사였거나 광복 당시에는 생존해 있었던 사람들을 칭합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백범 김구 선생
'독립운동가'라는 말을 들으면 제일 처음 떠올리게 되는 인물일 것입니다. 그는 10대부터 부패된 사회에 불만을 품고 동학군, 의병부대에 몸담고 시작한 나라를 위한 싸움에 20대에는 일본인을 죽인 죄로 사형 직전까지 가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30대 시절에는 애국을 위한 신민회에 가담했고, 40대에는 상해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활동하다가 독립 후 망명하여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뤄낸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는 또한 해방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와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막기 위해 자주적 통일 정부 수립을 추진하는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결국 그는 1949년 6월 그는 친일파의 총탄에 의해 피살되고 말았지만 김구 살해의 최고 배후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부분들이 남아있습니다.
2017년 개봉된 백범 김구를 소재로 한 영화 <대장 김창수>는 1895년 10월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미사변) 후 국모에 대한 복수를 위해 사건 5개월 뒤, 직접 일본인 스치다 조스케를 죽였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김구는 순탄치 않았던 그의 일생에 세 번의 개명을 했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가 김창수라는 이름입니다.
영화에서는 배우 조진웅이 김구의 역할로 영화를 중심 있게 끌어가며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영화는 '하와이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던바 있습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대한민국 독립과 더불어 조국과 동포들을 끔찍이 사랑했던 위대한 애국지사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자유란,
하나뿐인 목숨을 내가 바라는 것에 맘껏 쓰다 죽는 것.
유관순 열사
여성 독립운동가로는 어릴 적 교과서 사진으로 많이 접했던 유관순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이화학당 학생의 신분으로 '5인의 결사대'를 결성하여 무폭력 항쟁 아우내 3.1 만세 운동을 이끈 주역으로 손꼽힙니다. 그녀는 만세운동을 위한 태극기 만드는 작업등의 준비를 도왔고, 시위를 주도하였습니다.
1919년 3월 1일 유관순의 부모를 포함해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였고, 유관순은 시위의 주도자로 체포되어 옥중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옥중에서도 여전히 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3.1 운동 1주년을 기념한 옥중 만세운동을 벌였고 이에 호응한 형무소 내 수감자들이 함께 만세를 외치자 형무소 주변까지 만세소리가 가득하게 울려 퍼지게 됐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그녀에 대한 일본 군사들의 모진 고문은 더없이 잔인해졌고 결국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던 한 소녀는 1920년 9월, 18세의 나이로 극심한 영양실조와 고문의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순국하였습니다.
2019년 개봉된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3.1 만세운동 후 세 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을 배경으로란 흑백영화입니다. 영화에서는 배우 '고아성'의 열연으로 "나는 여기 들어올 때부터 죄수가 아니었다!" 감옥에 수감된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신념을 굽히지 않는 유관순을 연기했습니다.
태극기의 모양과 뜻
국기는 한 나라를 대표하며 그 민족성과 문화/역사를 담아냅니다.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문양과 바탕 모서리에 '건곤감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얀 바탕>
밝음과 순수,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태극 문양>
태극의 파랑과 빨강은 각 음과 양을 나타내며 그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의 형상화한 것입니다.
<건곤감이_4괘>
'건괘 = 하늘, 곤괘 = 땅, 감괘 = 물, 이괘 = 불'을 각각 상징합니다.
이들 4 괘는 태극을 중심으로 통일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태극기의 역사와 게양법
태극기는 왕명을 받은 박영효에 의해 제작되어 1982년 미국과의 수호통상조약에서 최초로 사용되었고, 1883년에 조선의 정식 국기로 선포되었습니다.
일제의 침략을 받고 이에 항거하며 태극기는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상징하는 국기로 많은 순국선열들이 목숨같이 지켜오며 독립운동의 흔적과 함께 많은 사연을 간직한 태극기들이 존재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통일된 태극기의 필요성으로 이듬해인 1949년 공식적인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공표되었습니다.
▶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한 태극기의 변천사가 궁금하시다면, 행정안전부의 태극기 변천사를 클릭해보세요.
▼ 통일된 태극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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